‘여성 서사’ 그리고 환경‧정치‧세대 등 ‘지금 시대’에 발 디딘! 신작 오페라 ‘The Rising World: 물의 정령’

브릿지경제


신작 오페라 ‘The Rising World: 물의 정령’ 창작진과 출연진(사진제공=예술의전당)


“두 여자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오페라라고 알려져 있지만 여자와 남자를 가리지 않는 한 인간과 (또 다른) 한 인간 그리고 자연이라 특정 지어진 물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프라노 황수미는 예술의전당이 야심차게 제작해 전세계 처음으로 선보일 오페라 ‘The Rising World: 물의 정령’(5월 25, 29, 3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이하 물의 정령)에 대해 “두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현 시대에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기후변화 등을 모티프로 한 시사적인 내용들을 동화처럼 풀어간 오페라입니다. 사실 이 오페라에는 여타의 작품처럼 사랑이야기라든지 그런 것들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들한테는 환경 그리고 왕권과 백성들의 이야기로 지금 한국의 시대 상황과도 견주어 비춰볼 수 있는 내용들을 다루고 있죠.”


 

신작 오페라 ‘The Rising World: 물의 정령’ 공주 역의 소프라노 황수미(사진제공=예술의전당)

‘물의 정령’은 물귀신과 물시계라는 한국의 전통적인 소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끝없이 범람하는 물로 뒤덮인 왕국을 배경으로 한다. 왕국과 원인 모를 병으로 세상에서 고립된 공주(소프라노 황수미)의 구원자로 소환된 장인(메조소프라노 김정미)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공주 역의 황수미는 “연습을 하면서 창작진, 배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디어를 얻으면서 이 작품에 대해 좀더 또렷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며 “왕권이나 권력=지혜는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왕국에 속한 사람이 아닌, 일반적인 한 사람인 장인을 통해 작은 점 같은 우리 모두에게도 어떤 순간에는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작 오페라 ‘The Rising World: 물의 정령’ 장인 역의 메조소프라노 김정미(사진제공=예술의전당)


황수미의 전언에 김정미는 “공주와 장인이 중심이 되는 극은 맞지만 왕과 공주, 물의 장인과 제자(테너 로빈 트리츌러)의 관계를 통해 인생 그리고 사회의 무게 중심이 올드 제너레이션에서 영 제너레이션으로 옮겨가는 이야기”라고 말을 보탰다.


“지혜가 저에게서 제자에게로, 왕권이 왕국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왕에게서 공주에게 넘어가면서 나라가 편안해지거든요. 지혜나 권력이 더 바람직하게 전승되는 그런 얘기죠.”


‘물의 정령’ 음악은 세계적인 음악출판사 쇼트 뮤직(Schott Music) 소속의 작곡가 메리 핀스터러(Mary Finsterer)가, 대본은 다양한 시상식에서 상을 거머쥔 ‘로스트 에코’(The Lost Echo), ‘장미전쟁’(The War of the Roses), ‘트로이의 여인들’(The Women of Troy), ‘블랙 디거스’(Black Diggers) 등의 톰 라이트(Tom Wright)가 책임진다.


신작 오페라 ‘The Rising World: 물의 정령’ 장인의 제자 역의 테너 로빈 트리츌러(왼쪽)와 왕 베이스바리톤 애슐리 리치(사진제공=예술의전당)


메리 핀스터러는 바로크 시대의 여성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를 소재로 한 오페라 ‘아르테미시아’(Artemisia), 르네상스 시대의 의사이자 수학자 지롤라모 카르다노(Gerolamo Cardano)의 일대기를 다룬 ‘비오그래피카’(Biographica), 전문가들과 남극 대륙을 둘러싼 역사적, 신화적, 과학적 개념에 대한 탐구 끝에 만들어낸 ‘남극’(Antarctica) 등을 비롯해 할리우드 영화 ‘다이 하드 4’ ‘사우스 설리테리’ 등의 작곡가다.

연출은 ‘카바레’ ‘지저스크라이스트수퍼스타’ ‘스칼렛 핌퍼넬’ 등 뮤지컬을 비롯해 토론토시티오페라의 ‘카르멘’ ‘박쥐’, 왕립음악원(Royal Conservatory of Music)의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Dialogues des Carmélites), 오페라 요크(Opera York)의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한국 예술의전당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Lucia di Lammermoor), ‘투란도트’(Turandot), ‘토스카’(Tosca), 대구오페라하우스 ‘코지 판 투테’(Così fan tutte), 대전오페라단 ‘라 보엠’(La Bohème) 등의 스티븐 카르(Stephen Carr)다.


신작 오페라 ‘The Rising World: 물의 정령’ 스티븐 오스굿 지휘자(사진제공=예술의전당)


엥겔베르트 훔페르딩크(Engelbert Humperdinck)의 ‘헨젤과 그레텔’(Hansel and Gretel),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그라운디드’(Grounded), ‘모비딕’(Moby Dick) 등에 참여했고 미국 쇼토쿼 오페라 컴퍼니(Chautauqua Opera Company and Conservatory)의 예술총감독인 스티븐 오즈굿(Steven Osgood)이 지휘를 맡는다.

한국 공공기관에서 위촉하고 해외 창작진들이 꾸리는 영어 창작오페라를 ‘K오페라’라고 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에 스티븐 카르 연출은 “저는 한국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정당하지 못한 것들을 부여할까 항상 조심스럽다”고 털어놓았다

“톰 라이트 작가팀과의 세 번째 작업이 ‘물의 정령’인데요. 우리는 특정 이야기나 하나의 문화에만 국한하기 보다는 클래식적인 이야기로 풀어가는 데 집중합니다. 한국문화만을 바탕으로 두지 않고 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이야기 속에서 클래시컬한 스토리텔링에 집중하죠. 물의 정령(카운트테너 정민호)도 마찰의 요소로 역할을 합니다.”


신작 오페라 ‘The Rising World: 물의 정령’ 스티븐 카르 연출(사진제공=예술의전당)


이어 “한국의 깊은 문화와 긴 역사에 대해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공부 과정에서 수많은 신과 귀신 이야기가 담겼다는 걸 알게 됐다”며 “그 신과 귀신들 이야기들 속에 물이라는 요소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도 배웠다”고 부연했다.

“제가 감히 한국을 대표해 전 세계적으로 내보낼 수 있는 공연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물의 정령’을 중국 배경의 ‘투란도트’, 일본 배경의 ‘나비부인’(Madama Butterfly)처럼 전 세계 분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유니버설한 이야기로 만들고 싶은 마음입니다."

작곡가 메리 핀스터러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면서도 한국 문화에 원래 있던 것들을 존중해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잘 꿸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신작 오페라 ‘The Rising World: 물의 정령’ 작곡가 메리 핀스터러(사진제공=예술의전당)


“오페라를 만들 때 언어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라틴어는 죽은 언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시대에 국한 받지 않죠. 예나 지금이나 오히려 더 가깝게 다가올 수 있는 언어인 것 같습니다. 이번 극은 영어극인데요. 영어 또한 라틴어를 바탕으로 만들졌기 때문에 연결성을 가지고 있죠.”

이어 “한국어도 조금씩 메아리치듯 듣게 되실 것”이라 귀띔하며 “한국어가 세계적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언어인지, 그 역사가 얼마나 깊은지를 함께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극의 주요 테마인 물은 메리 핀스터러의 설명처럼 “새롭게 접할 워터폰(Waterphone, 빈 울림통에 연결된 손잡이와 쇠막대 수십 개로 구성된 체명악기로 물을 채워 효과를 낸다)을 비롯한 다양한 타악기가 오케스트레이션에 스미며 끊임없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느낌을 살리는 음악으로 보여드릴 것”이라고 밝혔다.


신작 오페라 ‘The Rising World: 물의 정령’에서 선보일 디스트릭트의 ‘스태리 비치’(사진제공=예술의전당)


더불어 2020년 코엑스 거대 전광판에 걸린 ‘웨이브’(Wave), 뉴욕 타임스퀘어 ‘웨일 넘버2’(Whale #2)과 ‘워터폴’(Waterfall-NYC) 등으로 유명한 디지털 아트기업 디스트릭트(d’stirct)가 운영하고 있는 아트뮤지엄 작품 중 ‘스태리 비치’(Starry Beach)로 공연 30분 전부터 분위기를 연출한다.

예술의전당에 따르면 다수의 해외극장과 공연을 논의 중이라는 ‘물의 정령’에 대해 김정미는 “저희 오페라의 특장점은 서로가 굉장히 인내심을 가지고 협력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단점은 저희도 모르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신작 오페라 ‘The Rising World: 물의 정령’ 장인 역의 김정미(왼쪽)와 공주 황수미(사진제공=예술의전당)


“저희도 좋은 오페라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장담하지 못합니다. 오페라는 한국에서 시작된 장르가 아니고 지금 저희가 하고 있는 작업이 마지막이 아닌 처음이거든요. 처음 여러분께 선보이는 이 작품이 조금 마음에 안 드실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도 완벽에 가깝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유럽을 비롯한 해외에서 주목하는 콘텐츠 트렌드는 ‘여성’과 ‘환경’ 그리고 ‘한국’이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무모한 시도처럼 보일지도 모를 ‘물의 정령’은 뾰족함이나 비판의 시선 보다는 김정미의 당부처럼 “조금의 너그러움과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볼만한 행보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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